My Life/영화,공연

냉정과 열정사이 연애편지

daumstar 2007. 3. 12. 16:10
아오이.
갑자기 편지 쓰는 걸 용서해 줘.

그리고 이 편지가 아마...
처음이자 마지막의 무척이나 긴 편지가 될거라는 것도.
나는 지금 우메가오카의 아파트에 있어.
피렌체에서 도망쳐
그래 도망쳐 나와 일본에 돌아온지 얼마안됐어.
오늘 오랜만에 시모키타에 왔어.
너와 만났던 그 곳이야.

그 거리의 그 가게에서
우리는 스쳐지나갔다.
말도 나누지 않은 한순간의 스쳐지나감을
내가 왜 기억하고 있었는지.
다음에 만났을 때
너는 의아한 듯 했지만
난 그 미술관엔 전부터 자주 다니고 있었고
안내창구에 새로운 여자애가 들어왔다는 것도
그녀가 아르바이트라는 것도
과는 달라도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는 것도
그리고 그 애가 언제나 외톨이로 있다는 것도
알고 있었어.
혼자있는 것에 냉정해질 수 있는 여자.
나는 너를 무척이나 강한 애라고 생각했었어.
하지만 실제의 너는 달랐어.
외로워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지만
고집이 세고 자존심 강한 너를
나는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랐어.

그 당시 우리는 둘 다 열 아홉이었고
아직 어린 애들 같았어.
그렇지만 왜 그렇게 두근두근거렸었는지.
처음 걸려온 너의 전화.
처음 한 데이트 약속.
만나기로 했던 찻집.
처음 같이 본 영화.
맘에 드는 음악이나 책을 찾으면
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너에게 전했어.
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었지.
너 어렸을 적의 이야기.
너의 아버지는 일본인이고
그래서 아오이라는 일본 이름을 가지게 된 것.
그런 아버지를 일찍 사고로 여의고
어머니의 재혼 상대의 새로운 가족과 살게 되었다는 것
넌 아무리해도 정붙이지 못했다는 것.
줄곧 고독했다는 것.
조국을 알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다는 것.
넌 네가 머물 곳을 찾고 있다고 했었지.

처음 네가 내 방에 놀러온 그 날 밤
난 밤새 널 생각하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.
너와 지낸 그 때의 모든 것들이
변함없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
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하던 그 찻집은 이제 철거되고
지금은 새로운 건물로 변해버렸어.
그 중고 레코드 점도
이제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
그 곳엔 없어.

너 기억나?
우리가 즐겨 찾던
대학기념강당 옆 콘크리트 계단에서
첼로를 연주하던 학생이 있었다는 걸.
언제나 똑같은 곡에
언제나 같은 부분을 똑같이 틀리는
그 학생의 서툰 연주에
우리는 웃었었지.
처음 키스를 한 그 장소에서
그 때 들은 그 곡명을
아오이
난....
벌써 잊어 버렸어.
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이야기
그래, 이미 지난 이야기야.
끝까지 읽어줘서 고마워.
밀라노까지 너를 만나러 갔을 때
어른스럽게 행동하지 못했던 나를
지금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.
미안했어.
같이 지내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안부 전해줘.

잘 지내길 바라며.
마지막으로 네가 행복해서 다행이야.
멀리 밀라노에 있는 아오이에게.

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준세로부터.